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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중2 역사 요점정리- 삼국의 발전

 

시기별로 연표를 작성해보면 같은 시기에 살았던 왕들의 이야기가 더 쉽게 이해가 되고 구조화되기가 좋다.

 

위의 연표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삼국중 가장 먼저

 

중앙집권 국가의 형태를 갖춘 것은 고구려 태조왕이었다.

 

계루부 고씨의 왕위세습이 뭐가 중요한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특정 성씨가 왕위를 세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이는 연맹왕국의 단계를 벗어나 중앙집권을 이뤄가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중앙집권 국가의 4가지 키워드

 

왕위 부자 상속 /   율령의 반포  /  불교 수용  /   영토확장

 


 

태조왕 때 시작한 왕위세습은 고국천왕에 이르러 왕위 부자 상속으로 공고화 되어

 

중앙집권국가의 4가지 키워드 중 첫 번째 키워드를 완성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남은 키워드인 영토확장과 율령의 반포, 불교의 수용은 과연 언제

 

자리를 잡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연표를 들여다보다보면 그냥 생각 없이 훑어보는 것보다 좀 더 기억에 남기 쉽다.

 

 

고구려는 4세기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한 백제에 밀려 쇠약해지게 된다.

 

당시 백제의 근초고왕은 요서, 산둥, 규수지방까지 영토확장을 하면서 힘을 과시하게 되는데,

 

그에 의해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하게 된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얼마나 패배감을 느끼고 속이 상했겠는가?

 

절치부심한 소수림왕은 우선 국가 내부적으로 다잡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율령 반포와 태학 설립, 불교 수용이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율령 반포란 왕의 말씀을 법으로 확정하는 것으로 보면 되고,

 

태학을 설립하여 훌륭하고 성실한 나라의 일꾼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불교의 수용은 현생의 왕은 전생의 부처님과 같은 존재라고 백성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왕권이 강화되어 장악력이 강해진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중앙집권 국가의 마지막 코스인 영토확장에 나서게 된다.

 

 

소수림왕의 뒤를 이은 광개토대왕은 한강 이북을 점령하고 신라에 쳐들어온 왜구를 격퇴해주고,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여 자주의식을 드러내게 된다.

 

중국과 다른 연호를 쓴다는 것은 중국과 겨뤄도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이 한강 이북을 점령했다면 뒤를 이은 장수왕

 

수도를 평양성으로 천도하여 한강유역을 차지하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중원고구려비도 건립하게 된다.

 

출처 - 천재교육

역사에서는 작용과 반작용이 항상 존재한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차지하자 신라와 백제는 위협을 느끼게 되고

 

이는 신라와 백제의 나제 동맹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삼국에 있어서 한강의 의미는 너무나도  특별했다.

 

첫 번째,  황해를 통해서 중국과 직접 교류하여 선진문물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두 번째, 한강유역의 비옥한 평야는 많은 곡물을 생산해서 경제력이 높아졌다.

 

세 번째, 한반도의 중심인지라 교통이 편리하여 주도권을 잡기 좋았다.

 

 

이런 의미에서 당시 한반도에서는 한강을 가지는 자가 최강자가 되는 것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백제가 한강을 장악해가는 과정을 알아보자~~~^^